잔해 위에서 삶을 견디는 법
1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개인을 존중하지 않았다. 충성을 요구했고, 의심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시키는 대로 하면 괜찮을 거라는 막연한 낙관만 주입했다. 그 말들은 오히려 협박에 가까웠다. “따르지 않으면 실패한다.” “의심하면 불행해진다.” “조용히 일하면 먹고산다.”
그렇게 각자의 삶은 어느새 조건부 계약처럼 운영됐다.
그러면서도, 사람에 대한 고민은 빠져 있었다. 어떤 보상이 정당한가. 어떻게 신뢰가 형성되는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할 수 있는 사회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진지하게 다뤄진 적이 거의 없다.
대신 반복된 메시지는 단순했다. 열심히 하면 올라갈 수 있다. 그 위에 오르면 누군가를 부릴 수 있다. 개인의 성취는 곧 타인을 누를 수 있는 자격으로 변환되었다.
2
이런 유인 구조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정신적 가치는 지탱되지 않았고, 사회는 그 공백을 권위와 물질로 채웠다. 그 결과, 공동체의 신뢰는 해체됐고, 삶의 의미는 ‘살아남는 법’으로 축소되었다.
한때 ‘인문학의 위기’가 논의된 적이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논의는 드물었다. 대학과 언론은 직업 전망이나 학문적 권위에 몰두했고, 삶의 방향을 묻는 질문은 뒷전이었다. 정작 중요한 건, ‘왜 살아가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버틸 것인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결과를 목격하고 있다. 극심한 양극화, 무너진 신뢰, 출산과 가족에 대한 기피, 그리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
타인을 믿을 수 없고, 시스템을 기대할 수 없으며, 미래를 그릴 수 없는 상황. 이 모든 건 단순한 경제 문제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정신적 기반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3
신뢰, 존중, 책임, 공정함 같은 단어는 더 이상 공공의 언어가 아니다. 그래서 질문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좋은 삶인가.” “이 사회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남는 것은 하나뿐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누구도 믿지 않는다.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감각만을, 조용히 품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