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세상은 생각보다 정직하지 않고, 사람은 생각보다 논리적이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옳다고 해서 상황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옳은 말이 항상 좋은 결과를 만들지는 않는다
살다 보면 분명히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저 사람은 지금 자기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고 있구나. 사과 한마디면 끝날 일을 자존심 때문에 키우고 있구나. 본인도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고 있구나.
예전의 나는 그런 순간을 그냥 넘기지 못했다.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름의 정의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해서 좋아진 관계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내용을 먼저 듣지 않는다. 말의 의도보다 자신이 공격받았다는 느낌을 먼저 받아들인다. 아무리 사실에 가까운 말이라도, 그것이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순간 사람은 반성하기보다 방어한다.
결국 남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감정싸움이었다.
나는 맞는 말을 했지만 피곤해졌고, 상대는 틀린 행동을 했지만 더 세게 반격했다. 그렇게 몇 번을 겪고 나서야 알았다. 모든 사실을 말할 필요는 없고, 모든 잘못을 바로잡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어떤 말은 옳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해봤자 나만 손해라서 삼켜야 할 때가 있다.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생각보다 잘 알고 있다
이상하게도 사람은 남의 잘못에는 예리하면서, 자기 잘못 앞에서는 둔한 척한다.
하지만 정말 모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 탓만 하는 사람도 사실은 안다. 자기가 어디서 비겁했는지, 어느 지점에서 선을 넘었는지,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지. 다만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스스로 지켜온 이미지가 무너지기 때문에 끝까지 모르는 척할 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이 길어진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낸다. 어떤 사람은 갑자기 피해자가 된다.
자신의 잘못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기 때문에 더 필사적으로 덮는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예전에는 답답했다. 왜 저렇게까지 할까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본다.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도 자기 자존심 하나는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관계가 망가지고, 기회가 사라지고, 주변 사람이 떠나도, 끝까지 붙잡고 싶은 자기 모습이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 우스워 보일 때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도 내 틀림을 인정하기 싫어서 말을 돌린 적이 있고,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괜히 더 단단한 척한 적이 있다. 누군가의 어리석음은 멀리서 보면 잘 보이지만, 내 안에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을 볼 때 조금 덜 놀라려고 한다.
사람은 원래 그렇게까지 자기 자신을 지키려 한다.
감정은 아무 데나 쓰기엔 너무 비싸다
언젠가부터 몇 번 보고 말 사람에게 화를 내는 일이 아깝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무례한 사람을 만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상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으면 집에 와서도 계속 곱씹었다.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왜 저런 식으로 말했을까. 내가 만만해 보였나. 별것 아닌 장면 하나가 마음속에서 계속 재생됐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대부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시는 안 볼 사람. 내 삶에 아무 영향도 없는 사람. 그날 기분이 나빴다는 이유만으로 내 하루를 가져간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오래 내어주는 것은 결국 내 손해였다.
사람은 좋은 말보다 나쁜 말을 더 오래 기억한다. 열 번의 평온한 하루보다 한 번의 불쾌한 장면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그래서 마음을 지키려면 좋은 사람을 더 많이 만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을 빨리 흘려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에게 이해받을 필요도 없고, 모든 무례함에 반응할 필요도 없다.
어떤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절약이다. 내 감정, 내 시간, 내 하루를 지키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다.
보이지 않게 치워두는 것도 삶의 기술이다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때가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살다 보면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생각할수록 더 꼬이고, 말할수록 더 지저분해지고, 붙잡을수록 내 마음만 상하는 일들. 그런 것들을 무조건 이겨내야 한다고 믿던 때가 있었다. 정면으로 마주하고, 끝까지 생각하고,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일은 해결보다 정리가 먼저였다.
방 안에 보기 싫은 물건이 계속 눈에 띄면, 볼 때마다 마음이 어지럽다. 당장 버릴 수 없다면 서랍 안에라도 넣어야 한다. 마음도 비슷하다. 완전히 지우지 못하더라도, 계속 보이는 자리에 두지 않는 것만으로도 숨이 트인다.
무시하는 것과 치워두는 것은 다르다.
무시는 아직도 그것을 보고 있다는 뜻에 가깝다. 보이는데 아닌 척하는 것이다. 반면 치워둔다는 것은 내 시야와 생활의 중심에서 잠시 밀어내는 일이다. 해결할 수 없는 감정을 계속 앞에 두고 살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은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어딘가에 넣어둔 채로, 그래도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며 산다.
다짐은 때로 본성을 드러낸다
사람이 반복해서 하는 다짐을 유심히 보게 될 때가 있다.
이제는 화내지 말아야지. 이제는 미루지 말아야지. 이제는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아야지. 이제는 나를 더 아껴야지.
그 말들은 겉으로 보면 의지처럼 보이지만, 뒤집어보면 그 사람이 계속 실패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자주 다짐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주 무너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다짐을 들으면 그 사람의 목표보다 약점이 먼저 보일 때가 있다.
나 역시 그렇다.
내가 가장 자주 다짐하는 것들은 대개 내가 가장 자주 지키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무던해지자고 다짐하는 날일수록 나는 예민했고, 기대하지 말자고 말하는 날일수록 사실은 많이 기대하고 있었다. 괜찮다고 말할수록 괜찮지 않은 날도 많았다.
그래서 다짐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조금 슬프다.
그 안에는 사람이 되고 싶은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 사이의 간격이 들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그 간격을 메우지 못한 채로 산다. 그럼에도 또 다짐한다. 어제와 똑같이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오늘은 조금 다르길 바라면서.
어쩌면 사람은 그렇게 조금씩만 나아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익숙해진다는 말의 쓸쓸함
반복되는 일은 결국 무뎌진다.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던 일도, 몇 번을 지나고 나면 이상하게 덜 아프다. 처음 들었을 때 밤새 곱씹던 말도, 몇 번을 반복해서 듣고 나면 그냥 그런 말이 된다. 처음에는 크게 흔들리던 관계도, 비슷한 실망이 반복되면 더 이상 예전만큼 놀라지 않는다.
사람은 생각보다 잘 적응한다.
그런데 그 적응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 단단해지는 것과 무뎌지는 것은 닮았지만 다르다. 단단해지는 것은 나를 지키는 힘이 생기는 것이고, 무뎌지는 것은 더 이상 느낄 힘이 남지 않는 것이다.
가끔은 내가 강해진 건지, 그냥 조금 닳아버린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예전 같으면 화를 냈을 일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을 때. 서운해야 할 순간에 별 감정이 들지 않을 때. 기대하던 것들이 하나둘 줄어들고,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이 점점 편해질 때.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일이 아니라, 더 이상 세상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