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가 인생을 구원해주진 않는다
달리기가 인생을 구원해주진 않는다.
이건 오래 뛰고 나서 알게 됐다. 처음엔 그냥 달리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다. 살 빠지고, 몸 좋아지고, 기록 좋아지고, 남들보다 꾸준히 뭔가 하는 사람이 되면 인생도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갈 줄 알았다.
개뿔.
아무리 뛰어도 월요일은 온다. 밀린 일은 그대로 있다. 통장 잔고는 감동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 싫어하는 사람은 계속 싫고, 마음에 걸리는 일은 계속 마음에 걸린다.
새벽에 꽤 긴 거리를 뛰고 돌아와도 마찬가지다. 샤워하고, 젖은 옷 세탁기에 던져 넣고, 대충 밥 먹고, 휴대폰 열면 삶은 그대로 있다. 알림은 와 있고, 해야 할 일은 쌓여 있고, 어제 나를 거슬리게 했던 말은 아직도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
달리기가 그걸 없애주진 않는다.
그냥 내가 조금 덜 예민해져 있을 뿐이다.
처음 러닝을 시작했을 때는 이유가 대단하지 않았다. 살 좀 빼야겠다. 건강 좀 챙겨야겠다. 남는 시간을 어떻게든 써야겠다. 뭐 그런 정도였다. 처음부터 인생을 바꾸겠다는 마음 같은 건 없었다. 애초에 그런 사람이었으면 러닝 말고도 뭐든 잘했겠지.
근데 하다 보니 이상하게 진지해졌다.
처음엔 5km 뛰는 것도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10km를 뛰고, 하프를 뛰고, 풀코스를 뛰고, 기록을 따지고 있었다. 페이스를 보고, 심박을 보고, 훈련 일지를 쓰고, 신발을 사고, 대회 일정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달리기는 운동이라기보다 내가 나를 증명하는 방식이 됐다.
오늘도 나갔다. 힘들어도 했다. 남들은 자고 있을 시간에 신발 끈을 묶었다. 다들 핑계 댈 때 나는 뛰었다.
이런 마음.
쓰고 보니 좀 재수 없다. 근데 솔직히 그런 마음이 없었다고는 못 하겠다. 사람은 뭔가를 꾸준히 하면 거기서 자존심이 생긴다. 내가 이 정도는 하는 사람이라는 감각. 세상은 내 마음대로 안 되지만, 오늘 뛸 거리만큼은 내가 끝낼 수 있다는 감각.
그게 꽤 컸다.
무너지는 삶 속에서도 하나쯤은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 일이든, 인간관계든, 돈이든, 미래든 대부분 내 뜻대로 안 되는데, 그래도 오늘 정해둔 거리만큼은 어떻게든 끝낼 수 있다는 느낌.
그 감각은 분명히 나를 살게 했다.
근데 살게 하는 것과 구원하는 것은 다르다.
달리기는 나를 잠깐 다른 데로 데려간다.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워지고, 심장이 뛰기 시작하면 머릿속에서 난리 치던 것들이 조금 조용해진다. 어제 들었던 기분 나쁜 말, 해결 안 된 문제, 괜히 혼자 곱씹던 장면들. 그런 것들이 한동안은 뒤로 밀린다.
특히 긴 조깅할 때 그렇다.
처음 몇 km는 온갖 생각이 난다. 오늘 왜 이렇게 몸이 무겁지. 어제 괜히 늦게 잤나. 저 사람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아 그때 이렇게 대답했어야 했는데. 별 시답잖은 생각들이 계속 튀어나온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좀 닳는다.
계속 같은 리듬으로 발을 굴리다 보면, 머릿속에서 혼자 커지던 문제들이 조금 작아진다. 해결된 건 아닌데, 아까만큼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숨이 차면 사람은 생각도 오래 못 한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순간엔 도움이 된다.
문제가 사라진 게 아니라, 내가 잠깐 다른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달리기는 해결책이라기보다 유예에 가깝다.
당장 무너지지 않게 해주는 것. 쓸데없는 생각에 잡아먹히기 전에 몸을 먼저 피곤하게 만드는 것. 머리가 감당 못 하는 걸 잠깐 다리랑 폐한테 떠넘기는 것.
딱 그 정도.
근데 살다 보면 그 정도가 생각보다 중요하다.
인생에 뭐 대단한 구원이 자주 오나. 거의 안 온다. 갑자기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오래된 불안이 싹 사라지는 일 같은 건 없다. 그런 건 영화에나 있지. 현실은 대체로 찝찝한 상태로 다음 날을 맞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유예라도 필요하다.
하루라도 덜 망가지는 것. 안 좋은 생각 속에 계속 누워 있지만 않는 것. 뭐라도 해보려고 밖으로 나가는 것.
이 정도면 꽤 큰일이다.
달리기는 꽤 정직하다.
물론 기록은 사람을 배신한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대회 날 컨디션 망하고,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후반에 다리 굳고, 시계 보면서 아 조졌다 싶은 순간이 온다. 몇 달 훈련했는데 결과가 기대보다 별로면 진짜 허무하다.
근데 그래도 달리기는 사람처럼 말장난을 하진 않는다.
핑계는 만들 수 있다. 날씨가 더웠고, 코스가 어려웠고, 일이 바빴고, 컨디션이 별로였고. 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근데 몸은 결국 내가 살아온 만큼 반응한다. 그래서 잔인한데 편하다.
사람은 안 그렇다.
관계는 너무 복잡하고, 세상은 자주 부당하다. 잘못한 사람이 더 당당할 때도 있고, 맞는 말을 한 사람이 더 피곤해질 때도 있다. 괜히 말 꺼냈다가 나만 이상한 사람 되는 경우도 많다.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데, 이상하게 다들 대충 넘어간다.
그에 비하면 달리기는 단순하다.
신발 신고 나가면 된다. 힘들면 속도를 줄이면 된다. 못 뛰겠으면 걷다가 다시 뛰면 된다. 오늘 망했으면 내일 다시 나가면 된다.
이 단순함 때문에 계속 뛰는 것 같다.
인생은 대부분 이렇게 안 된다. 멈추고 싶다고 멈출 수 없고, 속도를 줄이고 싶다고 줄일 수 없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깨끗하게 다시 시작할 수도 없다. 뭔가 한번 꼬이면 계속 꼬이고,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남이 던진 변수에 휩쓸린다.
근데 달리기 안에서는 적어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오늘의 코스 안에서는 내가 나를 조절할 수 있다. 너무 빠르면 늦추고, 힘들면 숨 고르고, 안 되겠으면 돌아오면 된다. 별거 아닌데 이게 좋다. 내 삶의 다른 영역에서는 잘 안 되는 일이니까.
그래서 달리기가 좋았다.
단순해서 좋았고, 정직해서 좋았다.
물론 달리기를 한다고 사람이 갑자기 좋아지진 않는다.
달리는 사람이라고 다 성숙한 것도 아니고, 풀코스 몇 번 완주했다고 인격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서브3 했다고 인생이 위대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달리기를 좀 오래 한 사람일 뿐이다.
나도 여전히 예민하다.
별것 아닌 말에 기분 상하고, 남과 비교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잘하고 싶어서 무리한다. 기록 안 나오면 우울하고, 남 잘 뛰는 거 보면 괜히 초라하고, 쉬어야 하는데 불안해서 또 나간다. 달리기를 오래 했다고 이런 게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냥 예전보다 조금 빨리 돌아온다.
기분이 엉망이어도 일단 나가보는 습관이 생겼다.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는 시간이 조금 짧아졌다. 머리로 해결 안 되는 일들이 있다는 걸 조금은 받아들이게 됐다.
어떤 날은 뛰어도 아무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끝까지 기분 나쁜 채로 돌아오는 날도 있다. 나갔다가 몸만 더 피곤해지고, 괜히 뛰었나 싶은 날도 있다.
그래도 완전히 헛된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그 시간 동안 나는 나를 방치하지 않았다. 안 좋은 생각 속에 가만히 누워 있지는 않았다. 뭐라도 해보려고 밖으로 나갔다.
그 정도면 됐다 싶은 날들이 있다.
언젠가부터 달리기를 너무 대단하게 말하는 게 조금 민망해졌다. 러닝이 인생을 바꿨다, 달리기가 나를 구원했다, 뛰면 모든 게 괜찮아진다.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나도 그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으니까.
근데 오래 뛰어보면 안다.
달리기가 인생을 구원해주진 않는다.
아무리 뛰어도 해결 안 되는 건 해결 안 된다. 싫은 사람은 여전히 싫고, 불안은 돌아오고, 내 못난 점도 그대로다. 기록이 좋아졌다고 갑자기 훌륭한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달리기는 나를 조금 덜 나쁜 곳에 둔다.
머릿속에서만 커지던 문제를 몸의 리듬 안으로 옮겨주고, 내가 만든 생각의 감옥에서 잠깐 꺼내준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돌아오더라도, 오늘 하루를 조금 덜 망친 사람처럼 느끼게 해준다.
그 정도면 충분할 때가 있다.
달리기는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그냥 신발 신고 나갔다가, 땀 흘리고, 숨 고르고, 돌아오는 일이다. 빨래가 늘고, 무릎이 조금 아프고, 가끔 발톱이 죽고, 주말 오전이 사라지는 일이다.
근데 이상하게 계속 하게 된다.
아마 내게 달리기는 대단한 답이 아니라 오래된 습관에 가깝다. 삶 전체를 바꾸진 못해도, 오늘의 나를 조금 덜 망가뜨리는 일.
그래서 나는 내일도 아마 뛸 것이다.
뭔가 해결될 거라고 믿어서가 아니라, 해결되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도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
달리기가 인생을 구원해주진 않는다.
그래도 가끔은,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준다. 그 정도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