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마라톤

2024-03-17 | 서브3, 해냈지만

러닝을 처음 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였다. 그때는 뭔가를 이루겠다는 목표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아무도 없는 밤에 낙동강 천변을 달리는 게 좋았다. 고요하고, 어두운 그 강변길에서 매일 밤 혼자 뛰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첫 대회는 2011년 안동마라톤. 하프였고, 죽을 뻔했다. 그래도 그 뒤로도 계속 뛰었다. 대학생 때도 그랬다. 동아리나 러닝크루도 없이, 그냥 혼자 조용히.

상경해서 취업을 하고 나서도 러닝은 계속됐다. 특히 코로나 시기엔 더 자주, 더 길게 뛰었던 것 같다. 그 즈음, 문득 생각했다. ‘서브3 한 번 해보고 싶다.’

쉽진 않았다. 경주, 춘천, 제마, 도쿄… 몇 번의 시도에서 계속 실패했다. 그 실패들이 쌓이면서, 내가 부족한 게 뭔지 조금씩 알게 됐다. 그 덕분인지 도쿄를 뛰고 나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동마에서는 가능하겠는데?’

대회 당일, 이상하리만치 아무 감정도 없었다. 의식적으로 뭔가를 느끼지 않으려고 한 걸 수도 있고.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정해두고 있었다. ‘페이스를 정확히 맞추자. 내 리듬대로 간다.’ 나는 페이스메이커를 따르지 않는다. 그건 내 리듬이 아니니까.

그리고 결국, 2024 서울마라톤에서 서브3를 해냈다.

정확히 10개월 정도 걸렸다. 그렇게 오랫동안 간절했던 목표였는데, 막상 이루고 나니 ‘해냈다’는 감정보다 ‘별거 없네’라는 허탈감이 더 컸다.

이걸 이뤄내면 뭔가 바뀔 줄 알았다. 내가 좀 더 나은 사람, 혹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나고, 삶은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는 달리고 있다. 변화는 어쩌면 기록이 아니라, 그걸 준비하는 모든 과정 안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